[말씀항로] 고린도전서 1:10-17 본질을 잃지 않는 하나 됨 (Restoring the Core of Unity) 매일성경 큐티

 

 [고린도전서 1:10-17] 본질을 잃지 않는 하나 됨

The divided state of the Corinthian church mirrors our workplaces and churches today. Through Paul's plea to restore the single purpose of the Gospel of the cross, we are invited to a journey of recovering our original core and achieving true unity.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화해를 돕는 노란 원피스를 입은 단발머리 소녀의 수채화 일러스트


1. 성경본문요약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곡히 호소합니다. 그들 가운데 파당이 나뉘어 "나는 바울에게 속했다", "나는 아볼로에게 속했다", "나는 베드로에게 속했다",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했다"라며 서로 다투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결코 나뉠 수 없으며,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힌 것도, 자신의 이름으로 세례를 준 것도 아님을 분명히 합니다. 예수님께서 바울을 부르신 진짜 목적은 세례라는 형식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화려한 지혜가 아닌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 능력이 헛되지 않도록 복음 자체를 전하게 하심임을 선언합니다.

2. 본문 말씀의 이해

2-1.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동역자 되심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권면하기에 앞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을 분명히 밝힙니다. 하나님은 형편없는 우리를 부르셔서 당신의 독생자인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교제케 하신다(코이노니아)’는 것은 단순히 친교를 나누는 것을 넘어, 우리를 주님의 동역자(코이노노스)로 삼아 주셨음을 뜻합니다. 세상의 부모라면 자기 자식에게 훌륭한 친구만을 맺어주려 하겠지만, 하나님은 허물 많은 우리를 예수님의 친구이자 동역자로 세우시는 신실하신 분입니다. 우리가 어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그리스도인으로서 담대하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근거는 바로 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있으며, 성도가 서로 하나 되어야 하는 본질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2-2. 분쟁의 본질과 온전한 연합 (카타르티소)
바울은 글로에의 집 사람들을 통해 고린도 교회 내에 분쟁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분쟁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 간절히 간청합니다. 여기서 ‘합하라’는 말은 각자의 개성을 무시한 채 획일적인 로봇이 되라는 뜻이 아닙니다. 헬라어 ‘카타르티소’는 여러 부품이 제각각 다른 모양과 역할을 가지면서도 하나의 자동차를 움직이게 하듯, 혹은 찢어진 그물을 보완하고 수선하여 본래의 기능을 다하게 하듯 서로 협력하라는 의미입니다. 즉, 공동체를 이룬다는 것은 나를 탈피하여 전체를 보는 눈을 가지고 나의 강함으로 타인의 연약함을 수선해 주고 보완해 주는 성숙한 신앙의 과정입니다.

2-3. 파당의 사유화와 십자가 복음의 회복
당시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심지어 그리스도파까지 나뉘어 서로 자신이 옳다며 파당 싸움을 벌였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중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세력을 확장하려는 인간적인 이기심의 발로였습니다. 심지어 새 생명을 얻음을 의미하는 ‘세례’조차 파당을 불리는 수단으로 사유화되었습니다. 이에 바울은 자신이 온 것은 세례의 형식을 위함이 아니요, 철학과 수사학 같은 ‘말의 지혜’를 배제한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만을 전하기 위함이라고 선언합니다. 신앙의 정보만 소유하고 삶으로 복음을 살아내지 않을 때 분쟁이 발생하므로, 우리는 나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온전히 따르는 복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3. 말씀 앞에 선 나의 고백

어디를 가더라도 소그룹이 형성되고, 그 안에서 끼리끼리 문화를 만들며 서열을 나누려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애초에 모임을 만든 본질적인 이유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자기 의를 드러내며 자신이 우위에 서려는 다툼만이 남곤 합니다. 종 된 마음으로 겸손히 섬기기보다는, 오직 자신의 옳음만을 주장하며 왕 된 마음으로 살아가려는 이기적인 본성이 불쑥 고개를 드는 것입니다.

일터에서도 이러한 모습은 매한가지입니다. 각자의 전문성을 가지고 모인 본래의 목적에 충실하기보다는, 남보다 앞서가고 잘나 보이려는 욕심이 앞섭니다. 상사의 눈에 내가 가장 돋보여야 하고 내 의견만이 채택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필연적으로 남을 탓하게 되고 파벌을 만들게 됩니다. 그 무리에 끼지 못하면 외톨이가 되는 차가운 현실 속에서, '도대체 우리는 왜 이곳에 모였는가'라는 씁쓸한 본질적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목표를 향해 걷지 않고 옆 사람과의 경쟁에만 매몰될 때 모든 분열은 시작됩니다.

안타깝게도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잘하고자 하는 열심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하지만, 끊임없는 의견 대립과 분파 조성으로 파국을 치닫는 모습들을 종종 마주합니다. 어제 동료와 한 시간 남짓 나눈 대화 역시 그러했습니다. 누군가 감정이 상했다는 말로 시작된 이야기는 결국 어떤 선한 결론이나 발전적인 방향성 없이 그저 에너지를 축내고 시간을 낭비하는 험담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아무런 본질도 없는 대화에 소중한 시간을 할애한 제 모습이 한없이 부끄러워지는 아침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그곳에 왜 모였을까요? 살아계신 예수님을 증언하고,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모였을 것입니다. 한 걸음만 내디뎌도 금세 세속적인 형태로 살아가기 쉬운 연약한 우리이기에, 오늘 하루도 초심을 잃지 않고 본질을 굳건히 붙잡기 위해 애써야 함을 깨닫습니다.

주님, 본질을 잃고 내 의를 앞세워 파벌을 만들고 남을 판단했던 어리석음을 회개합니다. 허물 많은 나를 동역자로 삼아주신 그 크신 십자가 은혜만을 기억하며, 일터와 교회 어느 곳에서든 종 된 마음으로 하나 됨을 이루는 화평의 도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4. 오늘의 발걸음

  1. 대화의 목적 점검하기: 누군가를 험담하거나 깎아내리는 대화 자리에 놓이게 된다면, 지혜롭게 화제를 전환하거나 침묵함으로써 비생산적인 분열에 동조하지 않겠습니다.
  2. 나의 초심 떠올리기: 일터나 소속된 공동체 안에서 누군가와 경쟁심이 불일 듯 일어날 때, 내가 이곳에 불리워진 '진짜 이유와 본질'을 다시금 명확히 새겨보겠습니다.
  3. 십자가의 은혜 묵상하기: 내 안의 '왕 되려는 마음'을 매일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형편없는 나를 동역자 삼아주신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먼저 낮아짐을 실천하겠습니다.

나의 작은 행위가 씨앗이 되어 하나님의 계획하심으로 열매 거둬주심을 믿습니다.
(I believe that my small actions become seeds and bear fruit through God's pl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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