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베스트셀러 성해나 『혼모노』 서평 - 박정민 배우 극찬 소설집

[혼모노]

성해나 소설집 『혼모노』의 도서 표지. 중앙에 청사과와 홍사과가 반반씩 합쳐진 세밀화가 그려져 있다. 상단에는 '혼모노'와 '성해나 소설집'이라는 텍스트가, 하단 검은색 띠에는 박정민 배우의 찬사와 수상 기록이 적혀 있다. 청사과 쪽 배경은 점묘로 거칠고, 홍사과 쪽은 부드럽고 따뜻한 색감이다.

성해나 작가의 소설집 『혼모노』는 지금 대한민국 서점가와 도서관에서 뜨거운 이름.

도서관에서는 이미 두 달 이상의 예약 대기를 감수해야 할 정도로 인기가 높으며, 한 번 읽고 덮기엔 아까워 기꺼이 소장용으로 구매하게 만드는 '읽을 가치가 충분한' 작품입니다. 배우 박정민은 이 책을 향해 "넷플릭스 왜 보냐, 성해나 책 보면 되는데"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본인의 대본마저 작가에게 해석받고 싶다던 그의 말처럼, 이 소설은 활자만으로도 우리 삶의 가장 깊고 서늘한 구석을 드라마틱하게 파고듭니다.


혼모노(本物) : 텅 빈 굿판에서 마주한 진짜 나의 모습

* 혼모노(本物) : '진짜', '실물'이라는 뜻의 일본어. 한국에서는 단순히 '진짜배기'를 뜻하기도 하지만, 어떤 분야에 지나치게 몰입하거나 그 본질을 꿰뚫는 존재를 일컫기도 합니다.

30년 경력의 베테랑 박수무당 문수는 어느 날 훌쩍 모시던 신이 떠나버리면서 신기를 잃고 맙니다. 신애기에게 손님을 다 빼앗긴 채 어떻게든 가짜가 아님을 증명하려 아등바등 버티지만, 결국 신이 없는 텅 빈 굿판에 홀로 서게 되었을 때 그는 비로소 자신이 아무 능력이 없음을 깨끗하게 인정합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그 순간, 신의 힘이 아닌 오직 인간 문수만의 '진짜 춤'이 시작됩니다.

우리는 흔히 '잘 해낼 수 있을 거야'라는 스스로에 대한 기대에 갇혀 살아갑니다. 그러나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느끼는 좌절감은 우리를 더욱 가짜처럼 만들곤 하죠. 문수가 자신의 한계를 온전히 받아들인 순간 어깨의 힘이 빠졌던 것처럼, 우리 역시 "아, 나는 이 정도구나" 하고 바닥을 인정할 때 비로소 가식을 벗은 '괜찮은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연필 소묘로 그려진 박수무당 문수의 모습. 갓을 쓰고 도포를 입은 중년 남성이 눈을 감고 활짝 웃으며 땀을 흘리고 있다. 전통 부채를 들고 역동적으로 춤을 추고 있으며, 거칠고 생생한 연필 선이 그의 해방된 감정과 '진짜'가 된 순간을 표현한다. 배경은 전통 한옥 마당.

"이제는 가짜가 되어버린 문수는 진짜 자기의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럼 이는 진짜인가 가짜인가..."

길티 클럽 & 스무드 : 눈과 귀를 막아버린 이기심과 방관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는 범죄를 저지른 영화감독을 끝내 놓지 못하는 팬의 이기심을 다룹니다. 내 평온이 깨질까 봐 진실을 알면서도 눈과 귀를 막고 그를 변호하는 모습은, 학교 폭력 현장에서 방관자로 남는 우리의 비겁함과 닮아있습니다. 반면 「스무드」의 교포 3세는 스스로 눈을 감은 것이 아니라, 사회적 환경에 의해 진실이 가려진 경우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얄팍한 친절함에 속아 그 이면의 폭력적인 이념을 맹신하게 되는 모습은 환경이 개인의 판단력을 어떻게 흐리는지 보여줍니다.

우리는 모두 이해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나에게만 잘해주면 그가 누구든 상관없다는 합리화는 결국 공동체의 질서를 무너뜨립니다. 타인의 고통을 외면한 대가로 얻은 평화가 과연 진짜일지, 혹은 내가 속한 환경이 가르쳐준 것이 정말 진실인지 끊임없이 질문해야 합니다. 누군가가 나로 인해, 혹은 나의 침묵으로 인해 상처받고 있다면 그것은 결코 올바른 삶의 방식이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왼쪽은 어두운 곳에서 녹색 후드를 입은 남성이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눈을 가리고 있다. 오른쪽은 밝은 곳에서 표정이 모자이크된 군중이 여성을 에워싸고 있으며, 여성이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귀를 막고 괴로워하고 있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외면과 방관, 이기심을 표현한 이미지.

"믿고 싶어하지 않음이 믿지 않음으로 나아가고 오히려 변론하는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고 만다."

구의 집 & 우호적 감정 : '위한다는 명분' 아래 숨겨진 민낯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은 과거 사람을 고문하던 남영동 대공분실을 설계한 건축가들의 이야기입니다. 제자는 '건물은 사람을 위해야 한다'는 스승의 가르침을 들먹이며, 치밀한 고문실을 설계해 놓고도 그것이 '사람(사용자)을 위한 효율적 설계'였다고 항변합니다. 목적 자체가 악한데 그 안에서 명분을 찾는 무서운 모순이죠. 이런 합리화는 일상에서도 계속됩니다. 「우호적 감정」에서는 필요할 땐 누구보다 가깝지만 결정적인 이익 앞에서는 차갑게 등을 돌리는 직장 내 비즈니스 관계의 씁쓸함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적당한 가면을 쓰고 '우호적인 척' 연기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목적이 잘못된 명분이나 이기심에 기반한 관계는 유리그릇처럼 쉽게 깨지기 마련입니다. 타인을 위한다는 말이 정말 그 대상을 향한 것인지, 아니면 나의 안위를 위한 변명은 아니었는지 곰곰이 돌아보게 만드는 이야기들입니다.

흐린 날, 서늘하고 위압적인 붉은 벽돌과 콘크리트 건물인 '구의 집' 앞 인도. 건물은 흑백으로 처리되어 무겁고 위압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그 앞을 다양한 복장의  직장인들이 컬러로 지나가고 있다. 그들은 대화하거나 전화하며 무심히 걷고 있으며, 과거의 역사와 무심한 일상의 대비를 보여준다. 간판들은 '슈퍼', '철물점' 등으로 흑백이다.

"인간을 가장 고통스럽게 고문하기 위해 치밀하게 계산되어 만들어진 이곳도 사람을 위하여 설계한 곳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잉태기 & 메탈 : 약자를 방패 삼는 굴레와 시대의 존중

「잉태기」는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갈등 사이에 무고한 딸(손녀)이 방패막이가 되는 병든 가족의 모습을 그립니다.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 감정의 찌꺼기를 가장 약한 존재에게 배설하며 '총알받이'로 세우는 비극은 우리 주변에 너무나 흔합니다. 한편 「메탈」에서는 과거의 뜨거웠던 시절에 갇혀 존경을 강요하는 어른들과, 이를 '꼰대'라 치부하며 외면하는 젊은 세대의 단절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갑니다. 과거의 영광을 현재의 누군가에게 강요할 필요도, 젊은 세대의 오늘을 폄하할 이유도 없습니다. 억지로 나를 알아달라 떼쓰는 대신, 서로가 지나온 삶의 궤적을 묵묵히 인정하는 것. 그것이 서로에게 상처 주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진짜 어른의 지혜일 것입니다.

"각자의 인생을 존중하고 응원하면 될 일을... 나를 중심으로 두기 때문에 응원이 힘든가 부다."

성해나의 『혼모노』는 억지스러운 해피엔딩을 선물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외면하고 싶었던 내면의 이기심과 관계의 굴레를 투명하게 비춰줍니다. 줄거리가 멈춘 곳에서 시작되는 묵직한 여운은,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타인과 마주해야 하는지 깊이 고민하게 만듭니다.

진짜 내 모습이 무엇인지 헷갈려 마음이 소란스러운 날, 혹은 이해관계 속에서 사람에게 지치고 다친 날 이 책을 펼쳐보시길 바랍니다. 내 마음의 바닥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얽혀있던 복잡한 생각들이 차분히 정리되는 사색의 시간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Author : 성해나  |  Publisher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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