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위저드 베이커리, 상실의 빵을 굽는 시간 구병모가 던지는 서늘한 위로
구병모 <위저드 베이커리>
구병모 작가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늘 쉽지 않은 '내면의 향연'을 치르는 일입니다. 《절창》에서 그 난해한 서사를 이해하기 위해 한참을 사유하며 부족한 상상력을 동원해 나만의 서사를 구성했던 기억, 그리고 《파과》에서 60대 여성 킬러 '조각'이 보여준 폐쇄적이고 절망적인 사랑, 그 밑바닥에 억눌려 있던 외로움이 여전히 가슴 한구석에 서늘하게 남아있습니다. 작가의 글은 직관적으로 술술 읽히기보다 자꾸만 멈춰 서서 그 이면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습니다. 보통의 경우라면 답답함에 책을 덮어버렸겠지만, 구병모의 문장은 오히려 악착같이 그들의 속마음을 읽어내고 싶게 만드는 강한 인력을 발휘합니다.
도서관의 긴 예약 대기를 거쳐 드디어 손에 쥔 《위저드 베이커리》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동화책 같은 아기자기한 표지와 줄거리를 띠고 있지만, 그 속에 담긴 작가의 사유를 가늠하려는 순간 이야기는 한없이 묵직해집니다. 이야기는 위저드 베이커리의 기묘한 영업시간과 이해할 수 없는 빵의 재료들로 시작되지만, 그 이면에는 말더듬이라는 증상으로 나타나는 소년의 굳게 닫힌 마음이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1. 십 분의 영겁, 그리고 보름빵이 증명한 완전한 부재
소년은 왜 그토록 심하게 말을 더듬게 되었을까요? 그 기원은 여섯 살, 지하철역에 홀로 남겨졌던 그 '십 분'에 있습니다. 엄마는 십 분만 기다리라고 했지만, 어린아이에게 십 분은 가늠할 수 없는 영겁의 시간이었습니다. "추상적인 덩어리를 60개의 단위로 분절하는 촘촘하고도 오묘한 과거로부터의 약속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작가의 묘사는 소년이 겪었을 단절의 공포를 너무나도 정교하게 보여줍니다. 엄마는 그렇게 소년을 버렸습니다.
일주일 만에 돌아온 집에서 마주한 것은 가출 신고조차 하지 않은 아빠의 변명과, 끝내 천장에 아빠의 허리띠만 남기고 사라진 엄마의 부재였습니다. 한때는 아이를 잃어버릴까 봐 땀이 날 정도의 팔찌를 채워주었던 엄마가 왜 자신과 아이를 모두 버려야 했는지, 어린 소년은 알 길이 없습니다. 엄마가 마지막으로 주머니에 넣어주었던 '보름빵'을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빵이라 여기며 헤맸지만, 그 어디에서도 같은 맛을 찾지 못했을 때 소년은 비로소 깨닫습니다. 엄마가 없는 이 세상에서 그 빵의 맛은 영원히 찾을 수 없다는 것을요. 소년의 말더듬은 그 메워지지 않는 상실의 구멍이 밖으로 새어 나온 비명일지도 모릅니다.
2. 가식의 '혀'를 피해 숨어든 마법의 공간
아빠의 재혼으로 들어온 새어머니 배 선생은 잡히지 않는 부(富)로 인해 뒤틀린 욕망을 가진 인물입니다. 그녀의 교양은 가식으로 덮여 있고, 그 이면의 '혀'라는 무기는 소년을 끊임없이 난도질합니다. 대항할 수 없는 소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생존법은 숨죽인 채 그녀를 '피하기'뿐이었습니다. 지긋지긋한 위저드 베이커리의 빵으로 끼니를 때우며 유령처럼 지내던 소년은, 의붓동생 무희의 성폭행 사건 가해자로 몰리는 억울한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사회적 시스템조차 신뢰하지 않는 배 선생의 폭력을 피해 소년이 뛰어든 곳은 바로 위저드 베이커리였습니다.
그곳은 마법사가 빵을 굽는 기묘한 공간입니다. 인간의 비틀린 욕망을 이루어주는 저주와 맹목적 사랑의 빵들이 존재하지만, 그 뒤에는 반드시 합당한 대가가 따릅니다. 소년은 점장을 대신해 '몽마'에게 괴롭힘을 당하며 환상 속에서 배 선생과 아빠를 마주합니다. 배 선생이 소년을 창으로 찌르는 장면의 잔인하고 생생한 묘사는 다시금 《절창》과 《파과》를 떠올리게 합니다. 담담하게 고통을 서술하는 작가의 문체에 놀라면서도, 우리는 소년이 겪는 지옥이 결코 마법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현실의 민낯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이 공간에서 소년은 처음으로 자신의 말을 들어주고 걱정해주는 이들을 만나며 희미한 온기를 경험합니다.
3. 성장의 문법을 거부한 결단, 우리가 마주할 현실
이야기의 끝에서 작가는 점장이 건넨 시간을 돌릴 수 있는 빵을 통해 두 가지 경우의 수를 펼쳐 보입니다. 그 빵을 먹고 과거로 돌아가 현재의 상황을 바꾸는 'Y의 경우'와, 시간을 돌리지 않고 참혹한 현실을 끝끝내 맞닥뜨리며 살아가는 'N의 경우'. 어떤 결론을 원할 것인가는 오롯이 독자의 몫으로 남겨집니다.
"귀향이나 회복, 치유와 화해를 넘어 미래에의 전망에 이르는 성장의 문법을 무의식적으로 배제하였다."
작가의 이 고백은 독자의 마음을 울적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주인공이 모든 상처를 털어내고 행복해지는 '성장의 문법'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간을 돌린다고 해서 상처가 없던 일이 될까요? 엄마의 부재와 보름빵의 상실은 지워진다고 해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작가는 두 갈래의 길을 통해 진정한 성장은 과거를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부서진 파편을 안고서라도 오늘을 살아내는 것임을 이야기합니다.
전 사실 작가가 제시한 결말을 넘어, 또 다른 행복한 결말을 상상하고 싶어집니다. 억지로 '행복했더라'로 끝맺고 싶은 보통의 마음일지도 모르겠지만, 소년이 겪은 그 아픔들이 어떤 식으로든 보상받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아픔을 온전히 껴안고 제 발로 서는 소년의 모습이야말로 구병모 작가가 보여주고자 한 가장 진실한 인간의 의지일 것입니다. 답답하리만치 무거운 여운을 남기지만, 그 깊이 때문에 오랫동안 곁에 두고 곱씹게 될 책입니다.
"틀린 질문에는 맞는 답이 나올 수 없다. 하지만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면 우리는 스스로 답이 될 수 있다."
[저자 : 구병모 | 출판사 : 창비]
서평 작성자 : 프리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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