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서평] 노벨문학상 한강 ‘소년이 온다’ 인간의 존엄과 멈춰버린 시간
《소년이 온다》
어떤 책은 눈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온몸의 감각을 깨워 고통을 함께 앓아내야만 비로소 마지막 장을 넘길 수 있습니다.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가 제게는 그러했습니다. 1980년 5월, 광주라는 시공간에 갇힌 채 여전히 우리 곁으로 걸어오고 있는 연약한 영혼들의 숨소리가 행간마다 서려 있습니다. 이 글은 그 참혹한 아름다움 속에서 우리가 끝내 외면하지 말아야 할 인간의 얼굴에 관한 기록입니다.
1. 무너진 신뢰와 순수의 폐허
가장 참혹한 비극은 악의 거대함보다 선의 무력함에서 옵니다. 도청 상무관에서 시신들을 지키던 어린 학생들은 이념이나 사상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사람들이 다치고 죽어가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해 곁을 지켰을 뿐입니다. 어른들의 말을 믿고, 사람을 믿고, 세상을 믿었던 그 순수한 아이들은 두 팔을 높이 들고 계단을 내려오던 그 걸음 그대로 멈춰 서고 말았습니다. 나란히 누워 찍힌 사진 속 소년들은 누군가 가지런히 옮겨 놓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살기 위해, 혹은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맞췄던 그 걸음의 줄 그대로 그 자리에 쓰러진 것입니다. 인간이 인간에게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리가 폐허가 된 현장입니다.
"다섯 명의 어린 학생들이 이층에서 두 손을 들고 내려온 것은 폐허였습니다... 백기가 아닙니다. 항복이다 이거냐? 목숨은 아깝다 이거냐? "
2. 분노의 힘으로 되살아나는 영혼
고통은 때로 살아남은 자를 깨우는 가장 뜨거운 불꽃이 됩니다. 내 몸이 피를 쏟아내고 영혼이 부서질 때, 땅속에서 먼저 썩어가는 누군가의 존재는 오히려 살아남은 이의 혈관에 펄펄 끓는 분노를 주입합니다. 그 고통은 심장을 터뜨릴 것 같지만, 동시에 굴복하지 않게 만드는 원동력이 됩니다. 내가 이 고통을 잊어버리는 순간, 죽은 이들은 두 번 죽게 된다는 절박한 의무감이 우리를 다시 페이지 속으로 밀어 넣습니다. 눈물을 닦을 새도 없이 계속 읽어 내려가는 행위는, 그들의 억울한 넋을 향해 우리가 건넬 수 있는 유일한 '기억의 조문'입니다.
"그러니깐 그 여름에 넌 죽어있었어. 내 몸이 끝없이 피를 쏟아낼때, 네 몸은 땅속에서 맹렬하게 썩어가고 있었어. 그 순간 네가 날 살렸어. 삽시간에 내 피를 끓게 해 펄펄 되살게했어. 심장이 터질것 같은 고통의 힘, 분노의 힘으로"
3. 남겨진 자의 영원한 감옥, 어머니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시간은 결코 흐르지 않습니다. 자식을 늘 곁에 끼고 지낼 수 없기에 믿고 신뢰하며 기다려주었던 그 평범한 모성애가, 도리어 자책의 칼날이 되어 가슴을 후벼팝니다. 아들을 말리지 못했다는 후회, 그날 아침에 먹였던 김밥 한 줄의 기억이 어머니를 평생 숨 막히는 고통 속에 가둬둡니다. 준비되지 않은 이별 앞에 남겨진 부모는 이미 죽음과 다를 바 없는 삶을 '견뎌내고' 있을 뿐입니다. 새벽마다 아들의 이름을 가만히 부르는 그 목소리는, 우리 모두가 함께 짊어져야 할 거대한 상실의 무게를 일깨워줍니다.
"하얀 습자지로 여러 번 접어 싸놓은 네 얼굴을 펼쳐본다이. 아무도 엿들을 사람이 없지마는 가만가만 부른다이. ......동호야."
잊지 않겠다는, 가장 아픈 약속
《소년이 온다》를 덮는 순간, 우리는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됩니다. 소년들이 나란히 누워 있던 그 현장의 목격자가 되었고, 자식을 가슴에 묻은 어머니의 오열을 함께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읽으며 흘린 눈물은 단순히 슬픔의 표현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당신들을 잊지 않겠다"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는 가장 인간다운 약속의 증표입니다. 삶이 너무 가볍게 느껴지거나 타인의 고통에 무뎌질 때, 이 책을 다시 펴십시오. 그곳에서 여전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소년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 그것이 우리가 건넬 수 있는 작은 구원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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